니카 폭동의 잿더미 위에서 탄생한 지하 궁전
서기 532년, 콘스탄티노플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거의 폐위시킬 뻔했던 대규모 전차 경주 폭동, 일명 니카 폭동으로 불타올랐습니다. 도시의 절반이 잿더미가 되었고, 이 대규모 저수조가 자리 잡은 곳에는 한때 공공 바실리카가 있었습니다. 폭동이 진압된 후, 벨리사리우스 장군이 인근 히포드롬에서 3만 명의 폭동 가담자를 학살한 잔인한 진압 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새로운 아야 소피아와 이 예레바탄 사르느즈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빠르게 건축하기 위해 비잔틴 제국은 제국 전역의 파괴된 이교도 신전에서 336개의 기둥을 약탈하여 재활용했습니다. 정교한 코린트식 기둥 머리나 단순한 이오니아식 기둥 머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건축물들이 과거 제국의 영광과 파괴의 증거임을 알 수 있습니다.
7,000 노예의 희생, 그리고 눈물의 기둥
예레바탄 사르느즈의 압도적인 웅장함 뒤에는 인류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이 거대한 지하 공간을 파내고 벽돌을 쌓기 위해 7,000명이 넘는 전쟁 포로와 노예들을 동원했습니다. 축축하고 어두우며 위험한 환경에서 강제 노동을 해야 했던 이들의 삶은 참혹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고된 작업 도중에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내부의 '눈물의 기둥(Crying Column)'은 이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남겨진 조용한 기념비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기둥 표면의 독특한 눈물 방울 모양의 조각은 건설에 투입된 수많은 노예들의 고통과 슬픔을 상징하며, 방문객들에게 그들의 잊혀진 노고를 상기시킵니다.
굴복한 옛 신들과 잊혀진 지하 세계
예레바탄 사르느즈 가장 깊은 곳에는 비잔틴 기독교 제국의 강력한 선언을 담고 있는 상징적인 메두사 머리 기둥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이교도 종교의 강력한 상징이었던 메두사를 거꾸로 또는 옆으로 뉘어 진흙탕 바닥에 놓은 것은 단순한 구조적 편의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비잔틴 제국이 이교도 신들이 기독교 지배 아래 무력하고 굴복했음을 시각적으로, 신학적으로 선언한 강력한 행위였습니다. 이후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을 때, 그들은 흐르는 물을 선호하여 이 거대한 지하 저수조의 존재를 거의 한 세기 동안 잊었습니다. 1545년 페트루스 길리우스라는 프랑스 학자가 주민들이 지하실 구멍에서 물고기를 낚고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이 장엄한 지하 세계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져 있었습니다.